회사원 현유경(26)씨는 얼마 전 해외여행 가는 친구한테 “한국에 없는 특이한 ‘화장품 리미티드 에디션(Limited edition·한정판)’이 보이면 꼭 사오라”고 부탁했다. “파우치에 남들한테 없는 화장품 넣어서 다니면 뿌듯하잖아요.” 그녀에게 화장품은 ‘제2의 액세서리’.
화장품이 진화했다. 단순히 뷰티를 위해 봉사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됐다. 최근 유명 아티스트가 화장품 케이스 디자인에 몰리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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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이야? 화장품이야?
다이아몬드처럼 생긴 립글로스, 팔찌형 립글로스, 비녀로 쓸 수 있는 아이라이너, 큐브 모양의 메이크업 팔레트(이상 ‘랑콤’), 목걸이로 된 립글로스(‘조르지오 아르마니 코스메틱’‘크리스티앙 디오르’), 황금색 생쥐 모양 콤팩트 파우더, 주전자 형태 향수(이상 ‘에스티 로더’)….
얼핏 봐서는 도저히 화장품으로 안 보이는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들 제품은 모두 일반 라인과 별도로 나오는 리미티드 에디션. 반짝 나왔다 사라지는 원샷(one-shot) 제품이다. 내용물은 기존 제품과 큰 차이가 없지만 눈에 띄는 디자인과 희소성 덕에 젊은 여성들 사이에는 한정판 화장품을 수집하는 마니아도 등장했다.
뷰티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한정판에 올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재키 켐필드(Campfield) ‘에스티 로더’ 본사 PR담당은 “한정 생산되기 때문에 그때그때 트렌드에 맞춰 실험적인 디자인을 적용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건축가까지 화장품 디자인에…
뷰티업계에서 아티스트와의 협업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특히 ‘랑콤’ ‘에스티 로더’ ‘슈에무라’ 등 패션 브랜드가 없는 순수 화장품 브랜드들은 더 적극적이다.
‘랑콤’은 패션 디자이너 알렉시스 마빌(Mabille)이 리미티드 에디션을 맡고 있다. 운명 주사위, 반지, 목걸이, 비녀 스타일 제품이 모두 그의 작품. 나아가 ‘랑콤 컬러 디자인 어워드(LCDA)’라는 디자인상을 제정해 신진 디자이너를 발굴·지원하고 있다.‘에스티 로더’는 창업자 에스티 로더 여사의 손녀인 에어린 로더(Lauder) 수석부사장 겸 크리에이티브(creative) 디렉터가 패키지 디자인을 총괄한다. 60년대부터 디자인에 중점을 둔 ‘슈에무라’는 건축가 캘빈 차우(Calvin Chao)가 립스틱 케이스를 디자인할 정도로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를 활용하고 있다.
패션회사의 화장품 라인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토털 스타일링’ 전략에 따라 패션 부문의 시즌별 테마가 한정판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게 관례지만, 디자인에 들이는 노력이 적지 않다.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자신의 뷰티 브랜드 ‘조르지오 아르마니 코스메틱’에서 나오는 모든 화장품의 디자인을 손수 챙긴다. ‘샤넬’의 도미니크 몽크투와(Moncourtois) 메이크업 크리에이션 디렉터는 “더 이상 메이크업은 컬러의 싸움이 아니다”며 “내 머릿속에는 향후 10년간의 한정판 아이템이 들어 있다”고 호언한다.
원가는 별 변화 없어
디자인에 주력한 리미티드 에디션이 매출에는 얼마나 도움이 될까. 화장품업계 관계자들은 “판매 효과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고객을 위한 서비스 차원에서 기획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주판알을 튕기지 않을 수는 없는 문제. 국·내외 유명 브랜드 화장품의 원가를 조사해 본 한 화장품 개발 디자이너에 따르면, 콤팩트 파우더의 경우 고급이라 할지라도 플라스틱 소재는 약 2000원(퍼프·솔 포함), 메탈 소재는 3600~4000원 정도다. 립스틱의 경우 플라스틱은 약 900원, 메탈 소재는 약 1500원.
이 디자이너는 “아주 고급 소재를 쓴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지만, 고급으로 치는 장식용 동유럽산 고급 준보석류도 몇 백원밖에 하지 않는다”며 “디자이너와 협업하면 디자이너비가 별도로 나가는 것이지 원가 자체가 많이 올라가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조선일보
김미리 기자 miri@chosun.com

